밤의 클럽.
새벽. 세비야의 클럽은 한,두시가 되어야 피크가 된다. 씨에스타가 있어서 무르익는 시간도 더 걸리나보다.
코스프레?
밤 12시경, 유모자까지 끌고 밖에서 노는 사람들. 스페인 사람들 노는 습관은 유아기부터 형성된 건지도.
호스텔에서 주관하는 나이트 투어는 허리에 복대를 두르고 카메라를 들고, 밤에 히랄다탑과 성당, 강변을 둘러보는 것인 줄만 알았다. 밤 11시, 나는 남방을 입고, 안경을 쓰고, 검은 색 양말에 운동화를 신고는 카메라 꼭 챙겨 그렇게 밤길을 따라나선 것이다.
한 10명 정도 모였나. 미국, 프랑스, 스페인. 세계 각지에서 온 아이들의 복장이 심상치 않다. 우리의 큐티 가이, 낮에 Walking Tour를 담당했던 초록색 면티를 입은 일명 그린티도 보인다. 엔돌핀 러시. 얼굴은 귀엽고, 몸매는 핫하다. 심지어 클럽에서 노는 모양새도 착하다. (여자들과 안 놀고 혼자 술만 살살 마신다. 약간 지루한 표정으로. 헤이 맨! 나 여기 있다규!)
그렇게 평균연령 이십대 초반의 무리 속에서, 관광인줄 알고 끼었다가 세비야의 뜨거운 클럽 순례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취기가 살짝 오르고 시시각각 바뀌는 조명발 아래서 연로한 나도 한국판 막춤을 선보일 무렵, 우리는 여기저기서 끼어든 다른 일행과도 함께 춤추게 되었다. 여르름과 솜털이 보송보송한 녀석들이다.
페북을 틀 무렵, 쏟아지는 찬사.
“알 라이크 유어 페이스. 유 룩 트웨니투.” 한국서 듣기 힘든 칭찬의 인플레이션.
헤이, 베이비. 고마워.
나는 새벽 2시부터 지치기 시작했지만, 세비야의 클러빙은 4시까지 계속되었다. 졸리고 지쳤지만, 세비야의 밤거리에서 혼자 호스텔까지 찾아가기에 나는 너무 심약했다. 어쩔 수 없이 계속 그들을 따라가는 수밖에. 그러나 무지 지친다.
누군가는 나이드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했지만, 나이드는 것은 좀 서러운 것이다. 피천득이 말한 것처럼, 인생이 육십부터라는 얘기는, 사실은 인생이 육십까지라는 소리다.
나이가 좀 들어보니 알겠다.
마음은 이십대 때와 거의 비슷하고, 그리 현명해지지도 않았으며, 몸만 늙었다는 사실을.
나이까지 먹고 지혜롭지도 않으면 안 놀아줄까 봐, 관대한 척, 지혜로운 척이라도 해야 한다. 돈 말고 마음의 관대함으로 치자면, 내가 가장 관대했던 시절은 스무살 때였던 것 같다.
지친 나는 스테이지의 어느 구석에 앉아 아이들의 사진이나 찍어댔다.
모르지, 또.
어느 밤, 산토리니의 클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바이트 할 때까지 춤 추고 술 마시고, 베리 나이스 댄서, 라는 얼토당토한 말을 듣게 될지도. 세비야의 밤은 깊었지만, 힘들었다. 무엇보다 밤새도록 춤추고, 다음날 숙취로 일어나는 것이 재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