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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in the city

어른이 되는 기분

by likeitnow 2011. 7. 21.

좋다는 회사에 다니고, 주식으로 큰 돈도 벌어보고, 유학도 다녀오고, 연애도 하고. 그 많은 것들을 해도, 나는 어쩐지 어른이 된 것 같지가 않았다. 내가 처음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건, 촌스럽게도 운전을 시작하면서였다. 시동을 켜고 기어를 넣고, 창문에 한 팔을 거만하게 올리고 바람결에 머리를 흩날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짐짓 어른같은 표정을 짓는 것이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마도 처음 차를 갖게 된 계기가, 병원에 다니셔야하는 아빠의 보호자를 자처하면서였기 때문일 것 같다. 맨날 아빠 차에 얻어타고 다니다가, 내 차로 아빠를 모시고 다니면서다. 아빠의 첫 차는 큰 아빠에게 공짜로 얻은 옛날 르망이었고, 두번째 차는 2000년식 EF 소나타였는데, 나는 그때 2001년식 뉴EF 소나타를 사서, 그 차로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다녔다. 말하자면 한큐에 아빠의 차를 추월해버린 것이다. 

그 차를 타고 병원에 다니면서, 아빠의 수술동의서에 보호자로 서명을 하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입원과 퇴원을 계속했었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된 느낌. 그건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빼도 박도 못하는 어른의 느낌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느낌이 남아, 운전을 할 때면 어쩐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이마에는 나 어른, 이라고 적혀있는 듯 하다. 그 느낌은 무척 기분 좋으면서도, 어떤 책임감이 느껴지는데, 어른이 된다는 것 자체가 즐겁지만, 또 한편으로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한가한 일요일, 운전을 할 때면, 그런 즐겁고 부담스런 어른이 된 기분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