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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유럽

6일차 네르하. 더이상 혼자만의 여행은 없다.

by likeitnow 2010. 6. 18.

여행 6일차.

지중해의 발코니라.
과연 네르하는 지중해를 가장 넓게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테라스 같은 모양이었다.
드넓은 바다가 온 시야에 꽉 들어찬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식당들이 골목골목마다 가득하고, 소매치기의 걱정 따위 없어 보인다.
바다 외엔 별로 볼 게 없고, 이쁜 바닷가가 모두다. 해수욕을 하기에 해변은 그리 넓어보이지 않다.
(이때만 해도 내가 네르하의 매력을 잘 모를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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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르하, 유럽의 발코니로 가는 길.


숙소는 1박에 40유로 하는 정말 작은 싱글룸이었다. Puerta del Mar
유럽의 발코니에서 엎어지면 코닿을 천혜의 위치인데, 아쉽게도 내 방 발코니에서는 1m 간격의 옆집 흰 벽만 보인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너무 고파, 어느 레스토랑에서 9.9 유로짜리 3 course를 시켰다.
굉장히 맛있었다. 맛있는 식사와 좋은 위치를 생각해보면, 샐러드에 메인요리, 디저트까지 나오는9.9 유로는 거저나 다름없다.
혼자서 쓰리 코스 디저트까지 꿋꿋이 싹 비우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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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코스 저녁을 혼자 하는 심심함.


유럽에서 여행을 하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는데, 워낙 자식들이 일찍 독립을 해서인지, 가족단위의 여행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머리가 하얀 노부부 여행객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머리가 하얀 부부가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

그런데 이 노부부들도 두가지 타입이 있다.
첫번째 타입.
다정한 모습으로 웃음을 띄면서 손을 잡고 가끔씩 얘기를 한다.
이들에겐 영감님에게 길을 물어보거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할 때 미안하기까지 하다.

가끔 머리 하얀 할아버지는 숀코넬리 삘이 나서, 할아버지와 남자의 중간 정도로 보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옆에 있는 세련된 할머니는 아무리 세련되어도 늘 120% 할머니일 뿐이다. 가슴 아픈 딜레마다.
하여튼 이 다정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길도 매우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신다.

두번째 타입.
내가 저녁을 먹고 있는 지금 이곳에도 그런 커플들이 있는데, 입에 곰팡이가 날 것 같은 그런 부부들말이다.
앞으로, 옆으로 어디로 봐도 한 삼십년 살아서 더 이상 할말이 남아있지 않은 커플들이다.

이렇게 로맨틱한 장소, 이렇게 낭만적이고 예쁜 식당에서 둘이 마주보고 앉아서 한마디도 없이, 100년 동안의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지루함을 얼굴 한가득 안고 있는 커플들, 정말 비극이다. 
이 지루한 부부들을 보면, 나라도 가서 말 걸어서 저 심오한 심연의 침묵을 깨 주어야할 것 같다.
그래서 지루한 커플의 여행을 보면, 뭔가 불쌍해보이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쓰다가 느끼는 것이 있는데,
가장 불쌍한 존재는 함께 여행할 이가 없거나, 혼자 여행하는 할머니일 것 같은 벼락 같은 깨달음!
(나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매우 심각한 표정이다.)
지금은 혼자 여행하면서 뭐 삶에 대해 고민한다고 똥폼이라도 잡을 수 있다고 치자.

머리가 하얗고 노안이 오고 이빨이 덜컥거려 산해진미도 당췌 뭔 맛인지 모르겠고, 버스의 짐칸에서 케리어를 꺼내들 팔 다리힘도 빠진 할머니가 혼자 여행을 한다고 생각해보면, 이건 다시 한번 너무다!
무엇보다 삶에 대해 해탈하고 관조해야 할 나이 60에 삶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이 좀 웃기지 않은가?
그건 호날두가 동네 조기축구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이냐.

자, 권태로운 노부부보다도 못한 싱글 여행자가 될 것인가?
바야흐로 때는 커플의 시대다. 올해 결혼해야겠다.

여기서 생각해보는 최고의 여행동반자 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