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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섹시한 남자의 시대라도, 외모도 섹시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의미에서 후드티를 입은 하루키의 모습은, 방황하고 그리워하는 한 매력적인 젊은 남작가의 상징이었으며,어딘가를 아련히 바라보는 김연수의 모습도 이 작가의 매력에 엄청난 시너지를 남겨주었던 것이다.심지어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많이 읽지도 않았고, 그의 글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카키색 치노 바지 같이 그의 소설에 나오는 많은 패션 용어들을 나는 잘 따라가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후드티를 입은 젊은 하루키는 나의 이상형의 외모에 가까웠던 것이다. 허허. 이미 나이 들은 모습으로 만났던 김훈이나, 애초에 외모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던 이문열 같은 경우라면 이런 혼란스런 감정도 없었을 것을, 왜 하루키나 김연수는 빛나는 젊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렇듯 작가와 .. 2015. 5. 17.
그 저녁의 공기 아직도 생각 나, 그 밤. 초여름 밤이었나,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어둠이 깔려 있었는데, 공기는 청량하고 동네 골목길에선 익숙한 소음이 들렸어. 골목 끝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 개 짖는 소리. 우리집은 긴 골목길이 꺽이는 코너에 골목길을 마주 보고 있어서,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골목길로 쭈욱 늘어선 구멍가게, 이발소집, 앵두나무집, 쌀집을 한 눈에 볼 수 있었어. 그때 나는 짧은 커트머리를 하고 있었고, 특별히 할 공부도 없었으니, 아마 초등학교 5, 6학년쯤 되었던 것 같아. 한가하고 여유로운 저녁이었어. 그때는 뛰어 노는 것 외엔 몰랐던 시절이라 한가하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지만. 아무튼 현관 문을 열고 나서서, 낯익은 풍경 위로 깔린 어둠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밤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 2015. 4. 30.
봄날의 허세남 요즘 내가나이가 들어서 마음이 바다와 같이 넓어지고,사람들의 허세 같은 것도 귀엽게 넘겨들을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오는 일요일 오후,동네 까페에서 커피 한잔을 시키고 밀린 번역과 웹질을 하는 아름다운 봄 날 오후,저 앞자리에 앉아서 맞은 편 여자에게 각종 허세 -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조 단위의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거나, 교수들도 만나보니 나보다 하수더라 같은 - 이런 얘기들을 까페의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로 떠들고 있는 저 아저씨는하, 정말... 참아줄 수가 없구나. 어떤 말을 하건 상관이 없지만, 목소리를 조금만 낮춰주시면 안될까요.제가 장담하건데요, 괜찮은 여자분이라면 그런 얘기를 맨정신으로 소화하기 어렵답니다.지금 대화의 90%를 본인만 얘기하고 있는데요.. 2015. 4. 19.
동네 산책 이사를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은 동네가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때, 동네를 한바퀴 돌다보면 아무도 모르는 외국에서 혼자 살던 때가 생각이 난다. 아마도 이 곳의 경험을 누구와도 공유하고 있지 않으니까, 외국에서 아는 사람 없이혼자 살 던 때 생각이 나는 것이겟지. 동네 구석구석에 신기한 가게도 많아 멀찍이서 살펴보는 느낌도 비슷하고. 햇빛은 빛나고, 앞 뒤의 산에서 나는 숲 냄새도 좋고, 복작대지 않는 여유있는 거리도 마음에 들지만, 이 아름다운 거리를 혼자 즐기다보면, 비 온 후 풀 냄새가 가득하던 독일 프랑크 푸르트의 출근 길 모습이 겹쳐진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 아침에는 거실 창 밖으로 햇빛이 쨍하게 비치고, 주택가 골목 밖으로 오픈 마켓이 열렸다. 그 옆 노천 까페에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2014. 11. 8.